다이어리/자료 모음

작품으로 보는 김소월의 시 세계 - <서울의 거리><마주석><궁인창>

miff 2023. 5. 5. 10:53

2018. 9. 24. 19:17

 

 

학교 보고서로 내야 해서, 급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그리 진중하게는 보지 마시고 이렇게도 보는구나로 봐주세요 ;)

참고자료에 적은 논문의 요약


0. 서언

한국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김소월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색은, 민요시를 지은 시인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임과 헤어짐으로 인한 한을 노래했다는 점이 대부분이다. 후기에 민족성을 강하게 노래했다. 이뿐이며, 김소월의 변화를 조명하는 가르침이란 없다. 초기에 가졌던 특색과 T. S. 엘리엇이 "전통은 피나는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사실을 가지고 설명하자면, 한국 일반 고등학생이 익히 아는 김소월은 과도기 없는 완성체로서의 김소월일 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초기, 전기, 과도기적 상태를 관철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감동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한 측면만 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적절하지 않다. 현 교육 체계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별 수 없다지만, 비판할 사항은 비판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으로서, 필자는 '한민족어문학회'에 실린 글,「김소월의 초기시에 투영된 전통과 미의식 - 특히 신발굴 유작시를 중심으로 -」를 요약하며 본인의 견해를 넣으며 기술하고자 한다.

 

 

1. 전통주의

현행 교육과정에서 상투적으로 가르치듯이 김소월 시인은 전통과의 연속성을 갖고서 민요시를 지었다. 이 시기(1920년대)의 다양한 사조들은 박현수가 '전통주의'라고 일축한 공통성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전통주의의 특성은 문학사의 연속성을 인식하고 문학의 자율성을 지키며 전통미학의 계승을 추구하는 문학적 경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1920년대는 이와 같은 요소에 민족적 정체성 추구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296)

출처 입력

 

다양한 사조에서도 '김소월'이 속한 민요시파는 "문학사적 연속성 지향"이라는 강한 공통성이 있다.

 

 

2. T. S. 엘리엇의 전통과 김소월

엘리엇에 따르면 전통을 따르려면 "치열한 노력에 의하여 전통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과거성'만 아니라 '현재의 과거성' 또한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T. S. 엘리엇의 생각을 정리하면, 과거의 생명력은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소월도 초기시에 보이는 많은 실험을 거듭하여 현재 많이 알려진 형태를 끊임없이 지향했다.

 

 

3. <서울의 거리>

서울의 거리!

산그늘에 주저 안젓는 서울의 거리!

이리저리 찌어진 서울의 거리!

창백색의 서울의 거리!

거리거리 전등은 소리 업시 울어라!

어둑 축축한 육월 밤의

창백색의 서울의 거리여!

지리한 림우(霖雨)에 썩어진 물건은

구역나는 취기를 흘너 저으며

집집의 창틈으로 끄러들어라.

음습하고 무거운 회색공간에

상점과 회사의 건물들은

히스테리의 여자의 거름과도 갓치

어슬어슬 흔들나며 멕기여 가면서

검누른 거리 우에서 방황하여라!

이러할 때러라. 백악의 인형인듯한

귀부인, 신사, 또는 남녀의 학생과

학교의 교사, 기생, 또는 상여는

하나 둘식 아득이면 떠돌아라.

아아 풀 낡은 갈바람에 꿈을 깨 힌 쟝지 배암의

우울은 흘너라 그림자가 떠돌아라

사b흘이나 굴믄 거지는 밉쌀스럽게도

스러질 듯한 애닯은 목소리의

「나리마님! 적선합시요, 적선합시오!」 ……

거리거리는 고요하여라!

집집의 창들은 눈을 감아라!

이때러라, 사람 사람, 또는 왼 물건은

깁픈 잠 속으로 들러하여라

그대도 쓸쓸한 유령과 갓튼 음울은

오히려 그 구역나는 기를 불고 잇서라.

아아 히스테리의 여자의 괴롭운 가슴엣 꿈!

떨렁떨렁 요란한 종을 울리며,

막 전차는 왓서라, 아아 지내 갓서라.

아아 보아라, 들어라, 사람도 업서라,

고요하여라, 소리 좃차 업서라!

아아 전차는 파르르 떨면서 울어라!

어둑 축축한 육월 밤의 서울 거리여,

그리하고 히스테리의 여자도 只今은 업서라

 

일반적으로 아는 김소월의 시를 떠올린다면, <서울의 거리>는 꽤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리라고 생각한다. 극히 산문적인 동시에, 자유시적인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소월이 여러 실험, 특히 자유시 실험을 진행했음을 타당하게 추측해볼 만하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전언한 "변화"를 더 상세히 알게 된다. 시인 김소월이 민요에서 쓰이던 음보율과 음수율을 가져다 썼음에도 창조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음보 구분을 시행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부분이다. 시 <진달래꽃> 일부를 보자.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두 행을 할애하여 3음보를 맞춘다. 초기에 형식을 파괴하는 듯한 자유시가 없었다면, 시행 변환을 통한 음보율 보존이라는 독창성을 보일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형식을 지키면서도 창조성으로 아름다움을 산출하는 김소월 시의 특성은, 변증법적인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 산출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개인을 양성해야 함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면, 이런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다른 특징보다 더 중요했으면 중요했지 덜 중요하진 않다.

소월의 중기시에서 보이는 특색이 자연과 일상적인 삶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감회를 주로 표현하였다면, 초기시에서는 도시 혹은 잊혀진 전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294)

출처 입력

특히나 <서울의 거리>에서는 퇴폐적인 도시에 대한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몇 군데만 발췌해 보자. "산그늘에 주저 안젓는 서울의 거리!", "음습하고 무거운 회색공간에", "검누른 거리 우에서 방황하여라!", "어둑 축축한 육월 밤의 서울 거리여," 등 그리 밝지만은 않은 시선이다. 우울하고 어둡고 조금은 비관적인 모습이 강하다. '보들레르', 'T. S. 엘리엇', '릴케' 등이 도시를 어두운 모습으로 기술했음을 떠올린다면, 김소월도 어두운 서울을 요사했음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민요조를 썼음을 두고서 서방전통과 단절하고 한국적인 전통을 다시 이었다고 강조하는데, 시인 김소월에게는 다른 측면도 있다는 역점이 될 수 있다.

다음 시구를 보자 : "백악의 인형인듯한 / 귀부인, 신사, 또는 남녀의 학생과 / 학교의 교사, 기생, 또는 상여는 / 하나 둘식 아득이면 떠돌아라" "아득이다"라는 어휘를 검색하면, "힘에 겹고 괴로워 요리조리 애쓰며 고심하다"라는 의미인 북한어라고 뜬다. 어휘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위 구절을 읽으면 일종의 '인간으로서 통일성'이 나타난다. 어느 계층에 속한 인간이든지 결국 매마찬가지로 떠돈다는 통찰이다. '스노비즘' 혹은 '위선성'을 비판하는 대목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결론을 맺자. <서울의 거리>에서 나타나는 시인 김소월의 '세계'는 무엇인가? 김효중은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요약한다. 다른 말로 "단절 세계관"이라 명명하겠다.

이 시는 [...] 개인과 전체를 연속시키는 노력이 구체화된 시라고 할 수 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전체의 단절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삶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로서 오세영은 이를 “불연속성”이라는 용어로 규정한 바 있거니와 이는 개인과 전체 삶의 동질성이 해체된 식민지 삶의 폐쇄성을 가리킨다.(301)

출처 입력

<서울의 거리>에서 불연속, 곧 단절이 표상되는가? 두 가지 면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시 전체에 만연한 어두움이요, 둘째는 시 표면에 드러난 해소(혹은 해체)라 하자.

해소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 공간 • 상황이다. 상황부터 보자. 전자는 전설했기에 후자만 들여다 보자. '방황하다'와 '떠돌다' 같은 어휘도 근거이지마는, "상황적"이라는 말에 더 토대를 두고자 근거를 찾는다면 다른 변화를 찾는 편이 좋다. 초반에 보면 "히스테리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후반에 가면 없다고 한다. 초반에 보면 떠돈다든가 썩어진 물건이 창으로 들어간다든가 뭔가의 움직임이 나오나, 후반에 가면 그런 운동을 초발하는 주체마저 없는 듯이 고요하다는 진술밖에 없다.

공간을 보자.

식민지 상황 아래에서 서울은 더 이상 정상적인 서울이 아니고 “산그늘에 주저 안젓는”, “이리저리 찌어진”, “창백색의”거리로 객관화되어 있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다.(301)

출처 입력

객관화된다는 말은, '나'라는 존재의 밖에 있어 전혀 연관성 없는 걸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존재와 현상의 단절이라고 봐도 괜찮다고 본다.

전통과 연속되기를 강하게 바란 김소월임에도 시 자체에 불연속이 내제된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4. <마주석>

날로 오고가는 길손의 조망

조모(朝暮)로 기다리는 석신(石神)

물 우에 몸은 교변(橋邊)

묵묵히 섯슴

그대요 마주석, 애(愛)의 표상.

 

날과 비와 바람의 하늘 아래

흐름(流)을 마주 꿈 뀌는 꿈

생태(生苔) 묵(宿)는 봄가을

그림자 직키

그대요 마주석, 영(靈)의 표상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면 난도가 높은 시라고 느낄 것이다. 처음보는 어휘가 몇 있고 어휘끼리의 연관성 찾기도 쉬운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단어이나 뜻이 명확히 않은 마주석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마주석은 정확히 뜻풀이하기는 어려우나, 오세영이 “돌로 된 장승(?)”(「문학사상」 5월호, 2004, 79쪽)으로 유추한 바 있듯이 “돌로 된 장승”을 뜻하는 것으로 봄이 옳을 듯하다.(304)

출처 입력

뜻이 불명확하다는 것만이 <마주석>에 쓰인 어휘의 특징이 아니다. 다른 특징은 무속적 어휘를 썼다는 데도 있다. 전통을 연속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김소월 시 세계는 음보율, 한이라는 정서 등만이 아니라 무속적인 면도 계승했다. 1연 2행에서 "석신"을 쓴 부분만 아니라 마주석이라는 장승을 "애/영의 표상"이라고 하는 은유관계 또한 이를 말한다. 다른 김소월 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독특한 샤머니즘적인 면모이다. 이런 면모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부여된 상징'이기에 인식론적 지평까지 아우르는 시라고 칭해질 수 있다.

첫째, 시인의 찰나적인 눈에 포착된 사물로서의 마주석을 지적, 정서적 상징물로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태도가 보이고 있고. 둘째, 마주석을 석신, 교변, 애의 표상, 꿈, 그림자 직키 등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 셋째, 전통적인 음율에서 벗어나 파격적으로 자유로운 음율을 활용함으로써 현대시가 지향하는 한 요소를 담고 있다.(305)

출처 입력

특히 세 번째 요소에서, 김소월이 현대시에 기여해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성싶다.

 

 

5. <궁인창>

둥굴자 이지러지는 금음 달 아래

근(廑)여서 떨어지는 꼿을 보고서

다시금 뒷 기약을 맷는 이별과

지각나자 늙어 감을 나는 만낫노라.

 

뜨는 물 김 속에서 바라다보니

어젯 날의 흰눈이 덥힌 山 그늘로

눌하게도 희미하게 빗갈도 업시

쓸쓸하게 나타나는 오늘의 날이여.

 

죽은 나무에 마른 닙이 번쩍거림은

지내간 녯날들을 꿈에 보럄인가

서리 속에 터지는 꼿 봉오리는

몰으고 보낸 봄을 설어 함인가.

 

생각사록 멋 없슨 내 가슴에는

볼사록 시울 지는 내 얼골에는

빗기는 한숨뿐이 프르러 오아라

금음 새벽 지새는 달의 그늘에

 

이 시를 보고서 김효중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이 시는 소월의 다른 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즉 구중궁궐에 갇힌 궁녀들의 한(恨)을 타령조로 노래함으로써 서북잡가가 지닌 민중적 정서를 유장하게 표출하고 있다.(308)

출처 입력

<궁인창>에 이르러서야 <서울의 거리>, <마주석>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한(恨)'이라는 정서가 표출된다. '한'이라고 함은 상충되는 감정, 곧 사랑과 미움(혹은 원망)이 결탁해 일화하여 생기는 감정이다. 감정선을 수직선 혹은 스펙트럼과 비슷하게 나타내면, 사랑과 미움(혹은 원망)은 서로 멀리 떨어진 감정이다. 멀리 떨어짐을 '불연속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3번에서 언급한 '불연속적 세계관'이 정서적인 면모에서 표현되는 게 '한'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양립성'이라고 하는 특성에 준한다. 모순성이 극복된다. <진달래꽃>으로 대표되는 '개인 관계적 한'을 포함해, 인간 존재 근원에 깔린 '유한성으로 인한 한', 일제감점기라는 '현실 상황으로 인한 한'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궁인창>은 첫 번째 '개인 관계적 한'에 속한다. <진달래꽃>과 비슷하게 '이별'을 소재로 삼았다.

 

6. 정리

먼저로 언급할 것은 이 보고서의 성격이다. 형편상 다른 자료를 참고하지 못했을 뿐더러 위 세 시에 관해서는 자료가 많지도 않아서, 「한민족어문학회」에 실린 「김소월의 초기시에 투영된 전통과 미의식 - 특히 신발굴 유작시를 중심으로 -」를 중심으로 참고했다. 본 보고서의 3분의 1정도가 이 자료를 요약한 내용이다. 필자가 첨언하여 다룰 수 있는 부분만을 발췌 혹은 요약한 후에, 근거를 찾거나 내용을 보충하는 식으로 기술하였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가 아닌 다른 시를 고른 이유부터 설명하겠다. 일반에서 유명한 시는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고급 정보가 자연스레 전해진다. 김소월이 작사한 시가 자그마치 100편이 그냥 넘어감을 기억한다면, 유명작만을 탐구한다는 건 한 시인의 반절도 보지 못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창발성이 난무하는지라 다방면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교육자를 희망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연습을 할 필요가 있기에, 또한 김소월의 시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더 알고 싶었기에, 다른 김소월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의 거리>, <마주석>, <궁인창>을 묵상하여 작성하였다. “그렇다면, 대표작과는 거리가 멀잖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필자는 다시 반문한다. "한 사람의 대표작이란 과연 정해질 수 있는가?" 김소월이 지은 모든 작품은 김소월을 가리킨다. 고로 모든 작품은 대표성을 띈다. 유명작이라 하면 본 보고서는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으나, 대표작이기에 논란을 극복하고서 올려질 수 있을 따름이다.

<서울의 거리>에서는 '보들레르', 'T. S. 엘리엇', '릴케' 등이 기록으로 남긴 정서를 외면하지 않고서 차용하여 자신의 시로 변형하는 모습을 봤다. 또한, 김소월 시만의 아름다운 율조는 그냥 답습한 결과물이 아니라 자유시까지 넘나들며 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전통을 획득하였음을 보였다. (물론, 이 점은 김소월이 시를 여러번 퇴고한 흔적이 세간에 드러남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마주석>에서는, 김소월이 수용한 '정한'만을 수용한 게 아니라 샤머니즘 • 무속 신앙까지도 수용했음을 보였다. 또한 현대시가 지향하는 모습까지 선보였음을 통해 현대시에 영향을 끼쳤지 않았을까 하고 주장했다. <궁인창>에서는 '정한'을 수용한 김소월을 보였다. 초기 김소월을 이해함에 있어서, 일상 세계에서의 정서와 맞닿은 다양한 진술뿐 아니라 다른 측면도 고려되길 바라는 심정을 담았다.

 

 

7. 참고자료

[학술지]

김효중, 「김소월의 초기시에 투영된 전통과 미의식 - 특히 신발굴 유작시를 중심으로 -」(2005.6), 「한민족어문학회 46집」 pp.29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