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두서없는 생각 100

변화경험기

2018. 9. 27. 0:23 내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1. 예전에는 불편하지 않았던 사안서 불편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데서 위안을 얻는다. - 전자의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학적인 것이고 하나는 정치적인 것이다. 신학적인 면은, 내 나름의 신학이 생기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침해받는 것이 싫어졌고, 반박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이에게는 아에 입을 닫게 됐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북측•차별 관련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관심 게이지를 0에서 10까지 놓는다면, 예전에는 0이었다가 이제는 3에서 4 정도 되는 것 같다. 불편한 사안은 정치•신학 둘 다 언급하기 힘들지만;; - 후자에 관해서는, 덕질과 관련된 작업이다. 예전에는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인해서, (누가 그렇게 가르..

밤하늘은 검지 않다.

2018. 9. 8. 19:59 어릴 적 밤 시간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하늘은 그저 검은색 떡칠이었다. 누가 고치라고 한 적도 없고, 잘했다고 한 적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선생님께서도 별 말씀 안 하시고 받아들이셨다. 그런데, 밤하늘은 검은색으로 칠해졌는가? 아니다. 색 감각이 좋지 않은 나기에 무슨 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20180908)의 밤하늘은 짙은 푸른색과 보라색이 배합된 느낌이다. 빛이 100%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살이가 고달플 때, 고통 중일 때, 죽어감이 느껴져 절망에 휩싸이고 낙심하고 낙망해서 정신차리지 못할 때, 상투적으로 흔히 흑암 중에 걷는 것 같다고 한다. 의미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임을 안다. 천지운행적인 흑암이란 (이 말은..

[탐방, 마음 잡기, 열린 예배]

2018. 9. 8. 10:49 어제(20180907), 처음으로 다른 교회에서 금요일 예배를 했다. 에서 했다. 옮길 교회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녀보고 있는 요즘인데, 금요예배 참석도 이와 동일한 의도이다. 후기와 거기서 묵상한 내용을 점철해 엮어보고자 한다. 1. 내가 수영로교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에는, 소란스러운 고등부 예배와 긴데다가 감정을 자극하는 금요예배를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와 에서 예배했을 때, 나한테는 예전적 예배가 맞다는 감이 들었다. 아직 확신까지는 못하겠다. 금요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교회 중에서 예전적 예배를 소중히 하는 교회는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가기로 했다. 2. 예상을 했다 : 금요예배니 다른 교회랑 별반 다르지 않겠지. 한국교회 전통 형식에서..

실패

2018. 9. 1. 23:53 나, 알베르토 자코메티 묵상은 실패했다. 1. 나의 기록은 내 사유 구성의 체계물이지, 자코메티 조각상의 전유물이 아니다. 2. 사르트르에서처럼 '구체적인 인간'에 집중하기로 했으면서, 내가 기록한 자코메티의 인간은 이념적이고 관념적인 인간이었다. 인간의 여러 측면을 놓쳤다. 3. 자코메티는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썼고, 이를 조각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감상, 미술 선생님, 예술 교육]

2018. 9. 1. 8:35 뭉크의 「사춘기」에서 그랬듯, 창세기 처음에 나오는 두 인물이 그랬듯, 발가벗은 상태는 숨김 없이 드러내는 상태이다. 기독경 2장과 3장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인간은 다 발가벗고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상태가 돼야 한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창세기 3장 7절) 여기서의 알몸을 물리적이고 신체적이고 가시적으로 벗은 몸이라고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를, 작품을 보는 내 눈에다 끼워넣고자 한다.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도 근거를 가질 수 있는 작품 감상법이 되겠다. 목요일(20180830), 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상을 묵상한 기록을 두 편 올렸다. 이 글은, 이제까지 올린 글하고 상당히 결이 달..

모르는 것도 많아라

2018. 8. 1. 18:56 M이 만나자고 하여, 저녁에 할 일이 있었지만 오늘 저녁으로 미루고 그곳으로 갔다. 네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생각한다. "20180731 네 시간 이야기"라는 폴더에 넣은 파일 중 하나가 문뜩 떠올랐다. 떠오른 경위와 파일 내용을 기술하고자 한다. MO은 내 면전에서 나를 알고 싶으니 나에 대해 털어 놓으라던 첫 인물이다. 내 얘기를 내가 늘어놓는 행위는 즐겁다. 동시에 불편하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향이 보편 상념이고 이를 알기에, 내가 말해봤자 달갑잖게 여기리라고 예상하므로, 내 얘기인데 대상자의 전인에 맞추면서 얘기하기란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랑 별 다르지 않다고 보기에, 그냥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이게 제일 큰 이유이다)..

사랑 생각

2018. 7. 31. 13:34 사랑은 호르몬일뿐 (tistory.com) 이런 글을 썼다. 지금 생각은 바뀌었다. 마지막 문장은 변함 없지만. 변곡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 뇌이며 신경 작용이다. 그리고 (과학계에서 받아들이는지 아닌지는 모르나) 창발성이 살아가는 내내 작용한다고 본다. 아무리 신경 작용이라 해도, 전부는 아니고 압도적이지도 않겠다는 결론.

시행?

2018. 7. 31. 12:54 시행 : 같은 조건에서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우연에 의해서 정해지는 실험이나 관찰 - 같은 조건이라는 게 가능하긴 할라나. 수학은 결국 극추상 영역이니 관념 속에서는 가능한 걸까. 하지만 인간이 매순간 전환되는데 관념까지 같다는 게 가능할까. - 우연이라는 게 있을까. 시행의 예시로 주사위나 동전을 드는 경우가 많던데, 이의 결과가 진짜 우연일까? 던지기 시작하는 시점의 각도, 던지는 힘의 세기와 방향, 그 시점에 있는 공기 저항의 정도, 바람의 세기와 방향, 던져짐이 끝나고 닿은 면의 매끄러운 정도, 던져짐이 끝나는 순간의 각도. 정말로 우연이기만 할까. 던지는 각도와 세기와 방향은 몸의 신경 작용으로 일어난 게 아닐까. 그렇네, 기본적인 신경 작용..

엘목사님 일.

2018. 7. 31. 7:25 나는 왜 항상 이 모양 이 꼴일까. 누군가 가벼이 던진 돌은 개구리를 쳐죽인다는 말, 비판하는 날선 검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라는 조언, 같이 기다려보자는 권면. 계속해서 나와 함께 했으나 내 안에 들어오진 않았나 보다. 나는 이렇게 '그 가해자'가 됐다. 가해자를 그렇게 싫어하던 나도, 그냥 하나의 폭력자에 불과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벌써 깨져버린 사기 그릇. 어쩌겠나 싶다. 다 때가 돼서 그런 거다라며 자위하지만,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안다. 얼목사님을 떠나고, 그분과 교류가 없어진다는 현실은 딱히 무관심하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상처 입은 분들이다. 내가 상처 준 분들이다. 특히, 죽어 마땅한 죄를 엘목사님께 범했다. 부끄럽다. 엘목사님께만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