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2. 20:11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씀, 마로니에북스 출판함, 2013년 출판됨, 총 430쪽(이야기 415쪽, 해설 나머지), 15,000원으로 살 수 있음. 1962년 처음 출간. 별 5개(만점).
{『김약국의 딸들』 감상만 보고 싶으시다면 '3'으로 가서 읽으면 돼요...!}
1. 제게 '문학'이란 무엇이었을까요. 특히 '소설'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소설과 문학은 저와 항상 동떨어진 존재였습니다. '성서'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문학으로 다가오질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문학은 저와 참으로 많이 먼 존재입니다.
김영하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을 때도 문학이란 장르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윤동주 시집을 사 천천히 읽어도 문학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을 적에는, 웅장한 끌림보다는 문학에 살짝, 엄청 살짝, "살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조금 흥미가 생겼습니다. 물론 다음날이 되자 열정은 식어버렸고, 곧 문학은 제 기억에서 잊혔습니다.
2. 어느 한 날, 유시민 작가와 김영하 작가가 소개하여 '박경리'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표작을 알아보자 『토지』라는 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도서관에서 빌렸으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다 읽어보자!"라는 호방한 다짐을 되뇌었습니다. 처음 60쪽인가 읽고 포기했습니다. 2017년 6월 후반이네요.
11월 10일에 떠난 통영 문학 기행에서 '박경리' 작가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때는 조금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내와 지도를 담당하셨던 분이 박경리 작가께서 쓰신 『김약국의 딸들』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일에 바로 샀고, 후로 조금조금 읽었습니다.
오늘, 2017년 11월 22일 오후 4시 30분경, 완독했습니다. 400쪽 가지고 일주일을 넘긴 적이, 오늘로 세 번인가 두 번쯤 되겠네요. 문학을 어릴 때만 읽었고, 맨날 비문학하고 번역투만 읽다 보니 '문체'를 별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박경리 소설을 읽으려고 딱 펴니, 잘 안 읽히더군요. 문체가 너무 새로웠습니다. (인물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습니다.)지금 생각하니, 『토지』가 너무 안 읽혀서 포기했던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네요. 박경리 작가님 문체를 제가 많이 어려워하나 봅니다.
3. 아직, 문학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깊게 읽어본 적도 엄청 적으니 제가 뭐라 말할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끝끝내 말하자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잊히지 않을 책'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문학을 내 주변에 계속해서 두고 싶다,라는 소원이 생기게끔 해준 책입니다. 박경리 작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라는 다짐을 불러일으킨 책입니다. 머리로만 알던 문학이 쓰이는 방면과 영향을 드디어 맛본 게죠.
이야기, 문체를 포함한 다양한 요소가 제게 주는 동요는 이제까지 겪던 동요와 많이 달랐습니다. 플롯을 중간중간 놓친 이유도 있지만, "너무 좋다!"라는 느낌이 계속 든 책인지라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두 번 정도 더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계속 우울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비극'이 제 성향에 잘 맞다라는 느낌이 간혹 들곤 합니다. 『김약국의 딸들』이 초반부터 계속 "내가 비극이다!"라고 주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숙정(봉룡의 아내)이 자결하고, 봉룡(성수의 장인어른)이 송옥을 살해하고, 성수(김약국)가 연 어장이 잘 풀리지 않고, 한실댁(성수의 배우자)이 낳고 기른 용숙(첫째 딸)이 과부가 되고, 용빈(둘째 딸)이 파탄을 경험하고, 용란(셋째 딸)이 정신 질환을 갖게 되고, 용옥(넷째 딸)이 배와 함께 바다로 들어가고, 용혜(다섯째 딸)이 학업을 중단하고, 김약국이 암에 걸려 죽고.
사건이 하나, 또 하나, 생겨나고 풀리고 엮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순간순간이 저를 덮치는 듯했습니다. 표현된 비극이 한 개인이란 틀을 벗어나 가정에 비극을 안겨주고, 가정에 있던 비극이 곧 사회에 만연한 비극을 묘사한다는 인지를 하자, 제 마음이 더욱 미어졌습니다. "부디 버티게 하시고, 이런 사람이 없는 평화의 나라가 오기를 바랍니다."라는 기도를 순간순간 올렸습니다.
4. 비극이 굉장히 강하게 드러나나 비극으로 맺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가볍고 쉬운 출발이라고는 결단코 느낄 수 없고 힘이 드는 출발임에 확실한 여정을 시작하는 삶이 나옵니다. '김치수' 문학평론가께서 해제에서 말씀하신 "끈질긴 생명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이겠지요.
비극과 생명력이 차지하는 비율로만 보자면, 균형이 많이 무너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한 쪽, 곧 비극으로 기운 그네 같아 보입니다. 겉으로는 비극으로 기운 불균형이지만, 『김약국의 딸들』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비극으로 기운 불균형이라는 생각이 곧 사라지고 맙니다. 되려, 생명력이 더 심금을 울립니다. 비극으로 치우친 불균형이라는 생각이 곧 사라지고 맙니다.
제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 깊이 안으로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계속해서 빨아들이는 비극에 비극이 이어지는 산맥 끝자락에 가니 정경이 보여 산맥을 한눈에 조망하게 됐습니다. 또 누군가는 살아가게 되는구나, 하는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희망 섞인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5. 숙정이 자결하는 사건부터, 복선(伏線: 일어날 사건을 미리 독자에게 넌지시 암시하는 서술)이 꽤 많다는 특징을 읽으면서 계속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읽으시면서 복선을 찾으면서 읽으면 더 느리게 읽게 됩니다. 찾느라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아닙니다. 복선을 찾았으니깐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아니깐 뭔가 모를 긴장으로 빨리 읽을 수가 없어지더군요(예를 들자면 한실댁이 죽는 부분, 용옥이 바다로 들어가는 부분).
6. 당시 상황을 되게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희랍교 등 다 포함)가 조금조금 더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 유교 가치가 점점 쇠퇴하고 있다는 점, 새로운 가치관과 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더 찾으면 댓글로 좀...! ㅎㅎ)
7. 마지막! 좀 어려웠습니다. 익숙지 않은 문체, 처음 보는 어휘가 다수 있음이 연고가 되겠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소설 초보인 제겐, 등장인물이 너무 많게 느껴졌습니다. 20명 안팎 정도입니다. 갑자기 등장하는 사람도 몇 있어서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인물이 많긴 한데, 한 사람도 쓸 데 없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겠습니다! 인물이 많긴 하지만, 굳이 안 외워도 읽다 보니 다 머릿속에 들어오더군요.
그래도, 진짜,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진짜 꼭 읽으시길 바랍니다. 후회 안 합니다. 특히, 천천히 읽으시기를.
8. 모르는 단어
- 168쪽 밑에서 둘째 줄: 두신두신하다.
- 179쪽 밑에서 여섯째 줄: 양창국
- 186쪽 밑에서 아홉째 줄: 베멘하다
송씨의 감정이 강택진과 같을 수는 없다. 좋으니 궂으니 해도 기른 정이 있다. 그리고 성수가 나가면 김씨 집이 절손된다는 것도 중대한 일이다. 강택진은 물건을 찾으려고 쫓아왔지만 송씨는 사람을 찾으려고 쫓아온 것이다. (62)
성수의 깊은 슬픔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65)
한실댁은 그 많은 딸들을 하늘만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딸을 기를 때 큰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고 했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훤칠하여 뉘 집 아들자식과 바꿀까 보냐 싶었다. 셋째 딸 용란은 옷고름 한 짝 달아 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레 남들이 다 시중들 것이요,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리라 생각하였다. 넷째 딸 용옥은 딸 중에서 제일 인물이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이 적고 심정이 고와서 없는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나갈 것이니 걱정 없다고 했다. 막내둥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을 못 잔다. 그러나 연한 배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워 어느 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호강을 할 거라는 것이다. (86)
'내 살 떼어 개 못 주듯 낳은 자식을 어쩔꼬 …… 자식을 인력으로 하나, 다 내 팔자에 타고난 거로…….'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126)
매파가 돌아간 뒤 한실댁은 그냥 어리벙벙할 뿐이다. 좋은 일 궂은일이 한꺼번에 닥치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복잡하기만 하다. (129)
"독실이라는 것은 요새 보니까 고정된 어느 형이더군. 마음이 아니라 어느 형식이더란 말이야. 특히 예수쟁이들에게 있어서……." (163)
한식댁의 푸념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모두 남이요, 의논할 사람은 용옥이 혼자뿐이니 그럴 수밖에. (183)
"세상이 이리 분분해서 마음 놓고 살겄나? 하기사 나라 없는 백성이니 죽으라면 죽었지. 기가 막히는 세상, 도무지 아니꼬워서 늙은것들도 분통이 터지는데 젊은 놈들의 혈기에 가만히 있겄나 말이다." (194)
뒷걸은질치며 용빈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올려다보는 홍섭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난, 난 지난겨울 방학 때 실수를 했었다."
"……."
"마리아가 몹시 따랐다. 나이도 어리고 …… 그만……." (229)
한실댁은 멍하니 길 건너를 바라본다.
"다 복이 없어서 그런 거로 어쩝니꺼?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안 그렇습니꺼?" (263)
그는 쇠퇴해가는 육신을 느낀다. 하루하루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육신을 느낀다. 어쩌면 그는 지난날의 그 고요했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혼자서.
소청이는 내리막길을 내딛고 있는 김약국을 알아본다. 적의에 찬 눈이다. 어떤 때는 조롱이 된다.
(중략) 체념이나 균형을 잃은 자세란 언제나 약속이 된 생명의 가능 속에 있음을 김약국은 깨닫는다. (301)
말을 하는 한실댁이나 말을 듣는 용옥이나 다 같이 지쳐버린 듯 보고 있을 뿐 옛날처럼 갈팡질팡하지도 않았다. (319)
냉정한 남편 밑에 삼십여 년 동안을 남과 같이 지내온 한실댁은 그들 젊은 내외간의 부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다. (320)
한실댁은 머리 위에 무엇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구우!"
머리 위에 두 손을 얹었다. 그 손 위에 무엇이 또 쏟아졌다.
"아이구우! 사람 살려랏!"
한실댁이 푹 쓰러졌다. (332)
"와, 와 그런 말을 하십네까? 그래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을 못하시고 …… 정이 있습네까, 없습네까? 그 말 대답이나 하시이소."
"이렇게 만나러 왔으니 정도 있었겠지."
(중략)
소청이는 김약국을 한참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으흐흐흑, 아이고 불쌍해라. 그 어진 마내님이!" (340)
"저도 결혼하구, 용혜도 결혼하구, 그것을 아버지는 보셔야 해요. 기운을 내세요."
눈에 눈물이 가득 괸 채 용빈은 웃는다." (369)
가덕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산강호는 인양되었다. 용옥의 시체는 말짱하였다. 이상하게도 말짱하였다. 다만 아이를 껴안고 있는 손이 떨어지지 않아서 시체를 모래밭에다가 나르는 인부들이 애를 먹었다. 겨우 아이와 용옥의 시체를 떼어냈을 때 십자가 하나가 모래 위에 떨어졌다. (399)
"혁명은 로맨티시스트가 이룩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실리자가 장악하는 거죠. 로맨티시스트는 종국에 가서 패자가 됩니다. 그러나 로맨티시스트는 또 일어나죠. 어떤 세대의 가름길에서." (403)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409)
갑판 난간에 달맞이꽃처럼 하얀 용혜의 얼굴이 있고,
물기 찬 공기 속에 용빈의 소리 없는 통곡이 있었다.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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