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0. 15:59
※ 2018년 6월 7일에, 학력평가를 치면서 남은 시간에 한 생각 첫 번째.
지금 와서야 추가하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그냥 구별치 말고 읽으시면 될 듯해요.
인간人間 : 사람. 문자 그대로 한다면 '사람'과 '사이'를 합친 어휘입니다. 사람인즉 사람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라는 말일까요. 애초에 사람이 무엇인지 의문이 듭니다만 넘어가도록 합시다. 이 문제는 아직 제 능력 밖 문제니깐요. 사람 사이에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계속 반추하고 반사하는 존재입니다. 마치 거울과 같은 존재랄까요. 스스로를 타자에 기대에 정의 내리고, 그제서야 스스로 독존하게 됩니다. 스스로 독존하는 순간에서도 (타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타자와 연결하고 다시 공유하고 교류하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해나가고 다시 만들고 부수고 합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자에게. 이 과정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서로 유사성을 깊게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로는 "사랑하면 닮는다."라는 말이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유사성만 가지지는 않습니다, 비추고 비추고 다시 비추는 존재가 말입니다.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스스로에게 다르게 해석해 다른 방향으로 자신을 개척하기도 합니다. 1초만 방향을 틀었을 수도 있고, 180도로 방향을 틀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방향을 튼다는 개념은, 반면교사라는 측면만 아니라 유사성을 띠는 측면에도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계속 쳐가며 1초라도 시야를 - 존재를 틀며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을, 비치는 것을 다시 비추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앞에서 "많이 할수록"이라는 어휘를 넣었습니다. 타자와의 교류를 많이 할수록, 곧 반反과 복復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한다면이라는 말입니다. 타자는 어디에 있는 존재일까요? 타자는 가시적인 존재로 객체의 눈앞에 보이며 촉각을 통해 만질 수 있으며 서로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를 뜻하는 개념일까요? 타자라는 개념을 거기에 가두지 맙시다. 제가 가두지 말자면서 제시한 틀 또한 누군가를 가두는 틀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틀 자체를 없애자는 목표를 갖지 않습니다. 틀을 없앤다는 말인즉슨 불가능이니깐요. 시작부터가 틀 측량인 존재에게 틀을 없앤 채로 사유하라는 말은 폭력이 아닐까요? 고로 틀을 극한까지 개방하는 과점으로 수정해서 저는 생각하겠습니다. 타자라는 개념은 인식에서 시작하여 일정한 형체로 남아 인간의 내장에 붙어 있는, 아주 익숙한 개념입니다. 한자 뜻과는 다르게 우리는 타자他者라는 개념을 타물他物까지 자주 확장하고는 합니다. 타물이 무엇인가 정의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겠군요. 이를 차용하여, 저는 타자를 직접 만나는 존재만 아니라, 텍스트, 예술, 관념, 창조된 인식체認識體까지 확장하기를 제안합니다. 앞에 사람을 놔두고서 (놔둔다는 의미는, 신체를 놔둔다는 말도 되겠지만 화상 통화라든가 채팅이라든가 다양한 개념을 포괄합니다.) 교류하는 행위를 위시하여, 남들은 모르게 만들어낸 인식체認識體와 등등의 '것'과도 교류합시다. 인간의 독창성, 창조성, 독립성, 괴리성, 개방성을 실로 무한할 수 있으니깐요.
제게 참 인상 깊은, 사람을 정의 내린 말이 있습니다. 홀로그램 우주론과 함께 연결해서 이해하는, 서울에서 건물 하나를 통으로 빌려 열린 전시회에 갔다 오신 분의 글에 나오는 정의입니다. 로그아웃하고 싶은 존재에 대하여 — Steemit "두 세계를 비추는 존재"라 참으로 정서를 건드리더군요. 저는 이런 식으로 정서 흥분을 감지하게 되더군요. 여기서 의문점이 톡하고 오릅니다. 두 세계, 동등한 위치에 있는 세계일까요? 권력으로나 순서로나 위치로나 발달이나 등등의 다양한 기준에 따라 다른 얘기가 나오겠지요? 또 하나, 두 세계는 분리되는 세계일까요 일치하는 세계일까요 포함하는 세계일까요? 물론, 이 질문도 물리적인지, 관념적인지, 형이상학적인 견해인지, 다차원적 개념인지, 고차원적 개념인지 고찰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젖혀 놓고서, 더 무겁게 다가온 질문은 "애초에, 두 세계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세계가 뭔데?"라는 질문도 말입니다. 전자에서 한 생각부터 나눠보자면, 인간계人間世와 신계神世로 나눌 수 있잖을까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인간은 '두 세계' 사이를 비춰야 하니 인간계를 없애고 다른 세계를 들여와야 하겠습니다. 연속되는 금생계今生世 전체(이하, 금생계)와 신계神世로 수정해봅시다. 여기서 '연속되는'이라는 의미는, 시간과 공간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사회적인 흐름까지도요. '신神'이라 함은, 관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온전하게 알지는 못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이라고 내리겠습니다. 흠 이제 보니 다분히 유신론적 세계관이군요. 유물론이나 무신론 측에서 본다면 어떤 세계를 갖고 올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금생계'와 '신계神世'는 어떤 관계일까요? 사실 이 부분에서 해야 할 말이 정말로 많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절감합니다.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요. 당시 제 생각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음을 절감합니다. 단순히 '필요불충분 관계'로 이해하려 애썼으니 말입니다. '신계'가 더 큰 집합이며 '금생계'가 신계에 속하는 작은 집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계는 이론이 많으니 뒤로 미뤄놓는다고 해도, 금생계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금생계부터가 엄청난 다층 구조로, 여러 구조의 중첩인데 한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질문이, "세계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지?"입니다. '사람'이라는 단어를 정의 내리려면 엄청나게 추상화하고 또 추상화해야만 하듯이, 세계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세계 사람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계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이 사는 모든 문화권?/집합?/공동체? 등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있을' 그리고 '있던' 세계가 아닌 '있는' 세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도 썩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있다.'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있다고 아는 게 진짜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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