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묵상, 깨달음

[요한복음 7장 12~13절(짧은 묵상)]

miff 2023. 4. 20. 13:28

2017. 11. 18. 18:52

 

•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라 없더라
- 요한복음 7:12-13
• 군중 사이에서는 예수님을 두고 수군거리는 말들이 많았다. “그는 선한 사람이오.”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오. 그는 군중을 속이고 있소.”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분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 요한복음서 7,12-13


한국 교회가 떠올랐습니다.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말을 해서는, 언급해서는 안 되는 주제가 있는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유대인이 현대를 살아가며 억압하는 목회자와 같이 보였고, 무리가 현대를 살아가되 목회자라는 직업이 아닌 삶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무리가 왜 유대인을 두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으니 어찌 알 도리가 없겠지요. 제 욕심은 연고까지 다 알고 싶어하네요 :)
제가 여기서 불현듯 생각난 한 가지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라는 깨달음입니다. 특히 앞장 선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찾아내기를 원했습니다(11절). 그러나, 많은 사람이 유대인을 두려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찾아내지 못합니다(13절). 여기서 볼 점은 "두려워"했기에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끼리만 알고 말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현대 한국 교회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교회를 벗어나서 한국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를 생각해봅니다.
정신적으로든 육신적으로든 다양한 형태로 리더가 존재합니다. 리더란, 자고로 목표가 있습니다(보스도 마찬가지겠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같이 이루어야 합니다. 예로는, 에도 마부를 세운 이예야스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차후에 시간이 되면 올리도록 하죠. 같이 하기 위해서는 말을 다 같이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두려움을 없애야 하겠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음껏 발언하도록 허하셨다는 점이 생각납니다. 어디였는지 적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발화하고 계신데 제자가 말을 끊고 들어와 발화하는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격(고야 가즈오, 2017, 을유문화사), 경청(조신영, 박현찬, 2007, 위즈덤하우스)을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