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3. 10:05
모든 절대적 전제가 그러하듯이
모든 가치 평가의 전제가 되는
평등주의 자체는 결코
그것의 정당성이 증명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이다.
박이문,「나의 문학, 나의 철학」(미다스북스, 2017년), p.392
여러 생각을 하면, "이걸 대체 어떻게 정당화하지"라는 벽에 생각의 길이 막힌다. 상시 그러하였으며, 벽을 뚫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역시 부족하다라며 자신을 위로하고 끝이었다. 무엇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박이문에 따르면, 벽이 "절대적 전제"였기에 내가 못 뚫은 건가 싶다. 벽을 자유로이 넘을 수는 있지만, 결코 뚫을 수는 없다.
인간의 한계가, 죽음뿐 아니라 또 있다. 절대적 전제를 해명할 수 없다는 한계다. 박이문은 "양심"에서 근거를 찾는다. 양심으로 알고 그친다고 말한다. 나는, 절대적 근거를 어떻게 알 수 있다고 말해야만 할까. 나는 '직감' 혹은 '직관'에서 알 수 있다고 말하겠다.
인간 존재를 생각하면, 어느 수준까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는다. 아니다, 부딪히다가 더 적확할까. 인간 스스로는 한계를 만들 리 없으니깐 말이야.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를 이용하여 곧 위로 타고 넘어가면 좋겠다. 물론, 벽을 잘 파악하여 숙제로 들고서 다시 길을 걸어야 하겠지만. 막혀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편보다는, 한 걸음 더 내디뎌서 뒤늦게라도 힌트를 발견하는 쪽이 더 이득이고 효율 높지 않을까.
절대적 전제에 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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