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등

[진부한, 전제가 닫힌 사랑인 소설]

miff 2023. 4. 28. 13:43

2018. 7. 21. 13:35

 

 

※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즉석으로 서술한 내용을 그대로 따운 글입니다.

아몬드저자손원평출판창비발매2017.03.31.

1. 《공감하지 못한다고 힐난하는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공감하지 못함은 사랑으로 바뀐다.》 제가 손원평의 『아몬드』에서 찾은 바입니다. '공감하지 못하다'와 '변화'를 키워드로 삼고 논지를 진행하겠습니다.

 

2. '공감하지 못한다고 깎아 내리면서, 자신이 공감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아몬드』에 여럿 나옵니다. 먼저로는 구멍가게 주인 아저씨를 들겠습니다(16). 이분은 "네가 조금만 더 진지했으면!"이라고 하면서 윤재(공감을 힘들어 하는 주인공)를 비난합니다. 허나 진지하지 못한 사람은 되려 아저씨 같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봄녀서 아이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아이가 어떤지를 묻는 행위와 같은 아이에게 돌아갈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학교에서 윤재를 신나게 놀리는 학생'들'입니다(86). 윤재가 어떤 상황인지 헤아리기 보다는 자신의 유흥을 위해서 윤재를 객체화/대상화하여 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방관하고 역할하는 아이는 간접적일 따름이지 하지 않았다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윤재가 그 광경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며 내리 깔지만, 무엇도 느끼는 모하는 학생'들'임을 암시합니다. 크게 본다면, 어머니마저도 공감치 못하는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 얘기는 뒤에 가서 '사랑'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3. 다음 키워드는 '변화'입니다. 윤재는 변합니다. 처음과 끝만 봅시다. 윤재는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윤재가 받아들이는 감정을 기록한 텍스트는 텍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랬던 초기 모습과는 다르게 끝 부분에 가서는 표정이 다양해집니다(252). 이를 보고서, "조금 다르게 자"란 것이라며 아이의 일반성/ 보편적임을 나타냅니다(252). 비보편에 속한 아이가 보편이라는 자리로 옮겨갑니다.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글쓴이 손원평은 원인을 '사랑'에 돌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261) 사랑의 이중성을 뒤에서 논하겠습니다. 윤재는 변화할 기미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매뉴얼을 만들어도 '강압'으로만 느끼던 아이었습니다. 매뉴얼은 윤재를 바꾼 주요 변곡점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되려, 윤재가 생각게 하고 다르게 세상을 보게끔 도와준 요인은 사람(One)입니다. 소설에서는 '이수(곤이라고도 하죠)'와 '도라'입니다. 2층 아저씨도 가능하겠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했기에 윤재가 변화됐을까요.

 

4. '들여다 봄,' '기다림,' '질문,' '사랑,' '관심,' '관찰'이라고 하겠습니다. '공감'이란 무엇일까요? 여섯 가지 키워드를 다루기 전에 '공감'이라는 단어부터 봅시다. 정의야 많겠습니다만, 『아몬드』에서 찾을 수 있는 '공감하게 되는 과정'이 무엇일까요? 《존재'에 대해서' 앎을 뛰어넘어 존재'를' 앎에 다가서야 한다.》는 명제라고 봅니다. '대해서 앎'을 넘어 '을 앎'에 다가가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손원평은 윤재를 통해 말합니다. '들여다 봐야' 합니다(171). 들여다 봄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눠 봅시다. 첫째는 '아무것도 묻잖고 그냥 같이 있는' 들여다 봅입니다(129, 140). 두 번째는 '왜Why라는 질문 던지기'입니다(191). 이 들여다 봄은 '관찰'과 '관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윤재가 이수와 도라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빵집 아저씨(2층 아저씨랑 동일 인물입니다)가 윤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모든 과정, 곧 '관찰·관심 - 들여다 봄 - 을 앎'을 축약해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愛은 "예쁨의 발견"이니까요(179). 더 자주, 더 세세히 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예쁨"을 발견하며, 더 깊은 동화를 경험합니다. 더 많은 예쁨 발견을 할 수 있음은 '할머니'와 '빵집 아저씨'가 '윤재'를 대하는 데서와 '윤재'가 '이수'를 대하는 데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더 깇은 동화'는 백석이 끈 '수라'라는 시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점층적으로 심화되는 정서와 더욱 조심스러워 지는 태도와 간절히 바람,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5. 제가 위 단락에서 서술해 놓은 사랑을 임의적으로 '사랑-긍적정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랑-긍적정인 면'을 경험한 '윤재'는 바뀝니다. 윤재만 아닙니다. 이수 또한 바뀝니다. 비보편에서 보편으로, 말입니다. 허나, 바꾸지 못하는 사랑도 있습니다. 글쓴이는 '어머니'에게서 이를 이끌어냅니다. 어머니의 사랑 -- 아몬드 많이 먹이기, 행동 강령 암기시키기 등 -- 은 윤재에게 변화성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글쓴이는 변함없이 무덤하며 굳어진 존재로 윤재를 묘사합니다. 윤재는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 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40) 어머니의 사랑에는 어떤 성격이 있었기에 윤재가 저리 반응합니까? 윤재의 말을 더 들읍시다.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40) 저는 글쓴이가 『아몬드』에서 그린 어머니의 사랑을, '존재에게 다가가지 않는, 강요하는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를 임의적으로 '사랑-부정적인'이라고 합시다. '사랑-긍적정인'을 그리려 '사랑-부정적인'을 언급했습니다. '사랑-긍적정인'은 '순수한 질문'을 하며(191) "에쁨을 발견"하는(179) 성격을 지닙니다.

 

6. 제가 찾은 작가의 의도 정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제 사견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7. 아쉽습니다. 두 번 정도 "비보편에서 보편으로"라는 어구를 사용했습니다.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사랑의 작용을 "비보편에서 보편으로"에 가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에 작용에 변화가 없지는 않지만, 더 크고 더 주용하고 그래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작용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됨'입니다. 누구를 누가 사랑하는 작용 결과이냐라고 할 때, 주체와 대상 모두 자기 자신입니다. 이를 이끌어내는 사랑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 존재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사랑을 온전한 사랑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변화는 생각지 않은 채로 사랑하기, '그냥 너라서'가 이유가 되는 사랑이 일반이길르 기대합니다. 윤재같은 사람도, 이수같은 사람도, 도라같은 사람도, 다른 보편이라는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변하잖아도 / 그냥 환대하려는 사랑이 만연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랑-긍적적인'은 '사고방식 전환'에서 기인합니다.

 

8.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진부했다는 점입니다. 추천사에서는 극찬에 극찬을 거듭하던데, 뻔한 스토리였습니다. 소통 못하는 존재 - 소통 못하는 존재끼리 만남 - 다들 소통하게 됨,이라는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견으로는, 돈 주고 사서 볼 책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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