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강의 등

2018 희년학교 요약

miff 2023. 4. 28. 13:50

2018. 7. 28. 21:13

 

 

※ 20180725 ~ 20180728 희년학교에 사견을 가득 담아 정리하다. 강의 노트 참고 없이 기억만으로 써서 부족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간에, 근거 없이 주장 명제만 있는 경우는 희년학교 강의에서 그리고 나눔에서 충분히 이뤄져서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띄어쓰기 없는 건 의미상 고의로 없는 경우입니다.

 

1.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2009개정)에서는 이를 다양한 이상 사회사상의 공통점으로 설명합니다. "인간답게"라는 어구의 의미가 제각기 다르긴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상 사회로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이루시는 하느님나라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하느님나라는 이상 사회라는 개념에 가둘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깨어진 관계가 온전히 회복'돼 깔끔한 하나님이 이뤄진 상태입니다. 화해가 이뤄진 상태라고 합시다. ('화해'라는 개념을 들으면,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메시스적 화해'를 떠올리면서 거리감을 두시려는 분이 꽤 계시더군요. 첫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아도르노를 배척할 당위성은 없으며 수용하면 그리스도교적 논의가 더 풍성해집니다. 둘째, 화해라는 개념은 그쪽 사조에서만 쓰이는 개념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성공회 기도서>에서는 화해를 기도한다는 내용이 여럿 나옵니다.)

 

2. '깨어진 관계'라는 어구를 제가 언급했습니다. 깨어진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요?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의 논의를 참고하여 재정리하여 네 가지로 추리겠습니다 : (1) 피조 세계와 하나님 간의 관계 (2) 한 개인과 타자와의 관계 (3) 개인 스스로와의 관계 (4) 사람을 제외와 피조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 이 네 가지 관계의 회복은 '하느님나라의 회복'에서 중요하게 나타나는 특징이겠습니다. 관계와 더불어 하느님나라 시점 문제도 고려합시다. 이미 풍성한 논의가 있듯이, 하느님 나라는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입니다. 개인을 벗어난 범위와 개인의 범위, 그리고 이 땅에 임하는 개념과 초월하는 개념 등 초월적인 개념과 내재적인 의미를 모두 포용하는 상징symbol으로 둘 어느 쪽도 무시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이 과정은 거룩하신 성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이기 때문에, 하찮은 인간이라는 그릇으로는 온전히 담을 수도 이해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finitum non capex infinitum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륜적 삼위일체와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기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바꿔서 말하자면, 하느님나라는 어느 한 쪽의 견해 그리고 어떤 한 단어 한 사상으로 환원돼서도 축약돼서도 안 됩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이 무한함과 영원성을 잃은 -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 개념은, 보석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3.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보편 교회는 지체로 존재합니다, 구성됩니다. 그리스도 주 예수의 머리 되심을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같은 부위를 이루는 세포끼리 뭉쳐 부위를 형성하고, 부위끼리 경합하여 개체가 되고, 개체는 부위를 통해서 일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와 유사합니다. 야웨께서는 스스로 만족하시는 분이시나 굳이 인간을 사용하시어 일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곧, 각 개인에게 특정한 책무와 책임을 맡기십니다. 하나님나라의 온전한 실현에 쓰임 받을 책무입니다. 가시적으로는 지역성에 묶여 뭉치기도 하지만, 비가시적으로는 책무의 유사성에 따라 묶인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칼뱅주의의 가시 교회와 비가시 교회와 다른 의미입니다.) 어떤 형식으로는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바라시는 바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하나 돼 연대하고 연합하여 하나가 돼 자신에게 지워진 멍에를 개인적으로 지고 다른 사람의 멍에를 서로서로 같이 집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인 동시에 성령의 전인 교회가, 하나님나라 한 측면을 세우는 일을 해나가고 다른 측면은 다른 지체인 교회에게 신뢰함으로 맡기는 태도이겠습니다.

 

4. 결국 교회에게 맡겨진 책무에서 중요한 점은 하느님나라 성취 및 선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살아내셨듯이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나라에서, 우리는 '희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나이산 언약에서 간단히 등장하는(레 25:8 이하) 구시대적 율법적인 토지법이 아닙니다. 다윗이 바솔 시내에서 이 정신을 실행하여 율례 혹은 관습법으로 정하여 자신의 통치 40년 동안 지켰다고 역대기의 기자가 진술하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이사야 선지자께서 기대한 모습도 희년입니다(사 61:1 이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셨고 존재하시는데 이 중심에 그리고 시작에 희년이 있습니다(눅 4:18). 우리가 그렇게 돌아가자고 그리고 본받자고 주야장천 외치는 원시 교회 공동체에서는 희년 정신이 재해석돼 자발적으로 실현됐습니다(행 2장 후반). 에스겔서 45장 46장에서는 제사 강론 도중에 땅 배분 또한 가르치는데, 토지 문제는 희년 정신의 핵심입니다. 희년 정신을 해부한다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2번에서 언급한 '깨어진 네 관계'가 회복됨을 목도하게 됩니다. 2번에서 말했듯, 하나님 나라는 어떤 개념으로도 환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나라 = 희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희년은 하느님나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 문단 초반에서도 말했습니다. 핵심인 만큼, 하나님나라의 다양한 측면이 '희년 정신'으로 풀리기도 합니다.

 

5. 하나님나라를 풀어낼 다른 핵심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희년'일까요? 하느님뜻이 일상의 규레로 구체 실현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와 다양한 신앙고백에서 그리스도인이 많이 외치는 고백에 '하나님나라'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많이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나라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할 때, 제대로 설명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지극히 이상적이고 일상과 동떨어진 언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아닙니까. 성취하려면 목적은 추상적이더라도 목표는 구체적인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희년에 집중합니다. 구체화된 개념이라고 할 때, 다양한 율법을 떠올리시리라 생각합니다. 희년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다양한 관계를 깊이 함축하기 때문이라고 일축하겠습니다. 토지반환, 부채탕감, 노예해방을 실시하는데, 실로 급진적이고 혁명적인지라 풍성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다양한 관계는 희년 학교에 참여하신다면 알게 되실 겁니다 :) 저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성숙해질 필요가 더 있어서 줄이겠습니다.)

 

6. 하느님나라 운동은 가장 급진적radical한 운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God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이 신격화된다 한들 닿을 수 없는 지경에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한 극단으로든, 평균치로든, 위로 붕 뜨는 방향으로든 급진적이게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온건한 측면도 충분히 있습니다. 희년 운동은 하느님나라 운동의 핵심을 들고서 운동하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굉장히 '다층적'인 분이시고 '양립 가능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희년을 하나님나라를 어떤 견지에서 보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해석과 실천 방안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 강력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연대하는 공통점에 관해서는 신학 · 사회 · 정치 등 접점을 계속 만들어야 하기에 논증하기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태도에 관해서는 한결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비/반희년적 사회에 '저항'하며 희년적 사회를 형성하는 태도와 작업입니다. 희년 운동은 특성상 전방위 전면 압박을 실시하면서 반/비희년적 체계와 일상세계에 구멍을 내야 합니다. 갈수록 구멍을 많이 만들어 없애야지요. 이는 수많은 영역에서 함께 이뤄져야 하는 동시에, 영역 간 & 영역 내에서 끈끈한 하나됨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 된 다수에서 성취됩니다.

 

7. 희년 정신 실현을 현실화하려는 단체로 <희년함께>를 들 수 있겠습니다. <희년함께>는 토지반환과 부채탕감의 정신을 실현해 노예해방 정신을 이루고자 하는 '형성적 연대체體'입니다. 토지반환에 있어서는, 토지를 보는 맥락에 고대와 현대가 다름을 감안하여 토지 불로소득을 줄이는 방안으로 토지보유세 강화 - 토지공개념을 강력히 지지하고 추진합니다. 토지와 무관한 인류는 없기에 경제 정의 시작점으로 토지정의를 잡고 이를 해결하려 합니다. 부채탕감에 있어서는, 성인지 되면서 빚에 눌리며 사는 청년에 집중하는 <희년은행>을 운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유화化'를 추구하나 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기에, 연대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합니다. 계속 새롭게 형성하는 연대로 이뤄지는 집합입니다.

 

8. 이런 논의를 형상화한 또 다른 사례가 <밝은누리>입니다. 이 공동체(코뮤니타스)의 성격을 최철호 목사님은 '마을 · 교육 · 평화운동'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세 키워드가 하나에 묶임을 봅시다. 튼튼한 하나 됨을 위한 마을, 운동의 이어짐 · 재해석을 위한 교육, 목적으로서의 평화의 조화입니다. 특히나 평화는 소극적 개념과 적극적 개념이 모두 성취된, 정의로운 · 사랑이 넘치는 평화여야만 합니다. 물론, 제가 말한 내용에만 저 키워드가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아는 개념을 분해하고서 하느님나라 - 희년 과점에서 '평화 · 교육 · 마을 운동'을 재해석하면 정말 풍성한 논의가 나옵니다. 많은 역사 · 정치적 사례와 성서적 근거를 찾을 수 있고, 독창성과 상상력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9. 결국 뭐가 중요하냐고 한다면, 공동체와 다음 세대입니다. 이를 창의성과 독창성과 상상성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이겠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 형상의 중요한 특성이니, 이를 활성화해서 더 활성화하는 방안이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성취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