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여행

뜻 밖의 만남 - 김 할머님(71)

miff 2023. 4. 6. 15:58

2017. 8. 4. 12:04

아침부터 여행길에 올랐다. 부여 세종으로 가기로 했다.

새벽 6시에 기상해서 서둘러 기차로 올랐다. 오르자마자 책을 펼쳐 읽었고, 30분 정도 읽다가 모르는 사이에 잠에 빠졌다. 좀 잤나 싶은 생각이 들며 깼고, TED강의를 듣고 있었다.

 

와중에 옆에 앉으셨던 할머니가 말을 거셧다. 뭔가 싶었는데,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숙어라는 게 대체 뭐냐고 질문하셨다. 어휴 내심 놀랐다. 첫째로는 연로하신데 공부를 하신다는 점이었고 둘째로는 설명하기가 모호했기에 그랬다.

질문을 시작으로, 할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계기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무려 대학교 1학년이셨다! 단순히 열정만 갖고 계신 분인가 싶었는데 검정고시를 넘기고 대학 입학까지 하신 후에 일어, 중국어, 영어를 배우고 계셨다.

얘기가 흘러흘러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쭉 듣게 됐다. 진짜 악착같이 버티고, 발버둥 치시면서 사신 분이셨다. 어릴 때부터 배를 곯는 일은 허다했다고 하셨다. 게다가 남편분께서 일을 않으시니 직접 돈을 버셨고, 자식은 공부를 열심히 시켜 가히 탑이라고 일컫는 대학에 입학시키고서 결혼까지 하게 하셨다.

'자식 자랑'이긴 했는데, 결론은 할머님께서 엄청 노력하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식이 어떤 길을 가든지 믿어주셨고, 군대나 다른 데서 힘들 때에도 지혜로운 조언자로서 부단한 가르침을 쏟으셨다 하셨다.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도 몇가지 나누어주셨다. 첫째는 약속과 신의, 둘째는 관용, 셋째는 지혜와 생각이었다.

할머니께서 그렇게 사셨기에 내뱉을 수 있는 내용이었으리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의 상황이 되든 안 되는 했던 약속은 철저히 지키셨다. 돈을 갚으면 생활비가 부족하지만 미납할 바에야 다시 빌리겠다고 하시며 늦지 않게 갚으셨다. 약속 시간도 30~50분 일찍 나가셔서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으셨다 한다.

당신이 매우 떳떳하지만 결코 비난하지 않으셨다. 누군가가 늦었으면 그럴 상황이 있을 거라며 그저 넘어가셨다. 미래를 내다볼 때, 나도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으니 관용을 베풀라고 하셨다.

할머님은 생존을 위해 부단히 애쓰셨는데, 생각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치 않았으리라고 확언하셨다. 지혜롭지 않았다면 결단코 이렇게 공부하고 있을리가 없다고 하셨다.

결론은 이런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배우자 조언이었다. 그래도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 내가 바라는 배우자의 모습을 내가 먼저 갖자인지라, 약속은 철저히 지키고 포용할 줄 알며 비판적 사고를 키운 사람이 돼야겟다 다짐했다.

할머니께서 헤어지기 전에 한 말씀 하고 가셨다. 노인도 이렇게 공부하니 자극이 많이 되지 않느냐하는 내용과 함께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더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하겠다! 또, 들어줘서 고맙다라고 하셨는데 순간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발전하겠다하는 내용이 속으로 크게 울렸다.

 


아, 중간중간에 "'예수 믿는 여자'랑 결혼하라"고 아들에게 계속 요했다고 말씀하셨다. 의아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반성을 할 줄 알기 때문에 그렇다 하셨다. 요즘 그리스도인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서 동의치 못했다. 그래도 뒤이어 생각하면, 우리나라 초대 기독교인은 아주 기독교인 다웠다는 얘기이니 현대 기독교도 이렇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