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8. 23:10
나는 기억 편식이 심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찌어찌 기억을 되돌려 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칭하는 어구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한다.
어린이집 때는 나랑 함께 한 아이가 없어서 실패. 초등학교 때를 생각해 보았다. '달리기, 인기 많았음, 키 큼, 모범생'이 주를 이루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책벌레'라는 별명이 붙었다. 물론, 6학년 때 제대로 읽은 책이 없다. 중학교 때는, '모범생, 기독교인, 팔방미인, 책벌레' 격으로 불렸다. 책에 막 열심을 내거나 그러진 않았다. 고등학교 때, '걸어 다니는 성경책, 도덕책, 광신도, 책'과 비슷하게 불렸다.
언제 있든지 빠지지 않던 칭호가 '책'과 관련된 칭호였다. 책을 너무 싫어해서, 책을 읽기 시작해서, 책을 너무 좋아해서. 책이 나를 소개하는 아주 좋은 방도이다. 내 정신 상태와 책은 항상 같이 움직였다.
책이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내가 책과 끊어지지 않으려 했을까. 둘 다 아닌, 나보다 훨씬 큰 무어가 가까이 했을까.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책이 없는 '나'를 그릴 수 없다. 최근 들어서 더 많이 심해졌다. 책에 점점 더 집착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책이 내 가방에 없는 경우란 없다. 아무리 짧은 거리, 단기간이라도 가방에 책을 넣는다. 이마저도 안 되면 전자책을 본다. 서평을 본다.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생각했다. 답이 나왔다. 살려고. 몇몇이 기독교 관점 곧 구원을 이루기 위해,라고 해석한다. 완전 틀렸다. 액면 그대로. 살고 싶어서 읽는다. 죽고 싶었을 때, 우리 신과 책이 나를 위로했다. 날 붙잡았다. 난 살고 싶었다. 더 매달렸다. 신이란 분은 비가시한 분이시니 보이는 위안을 찾았다. 불안했다. 더 매달렸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 깊숙한 곳을 위로해주는 존재는 오직 신이시다. 신께서 위로하시는 도구가 책이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은 경험은 이사무엘 강도사님 외엔 없다.
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읽는다. 조금만 틈을 주면 부정 생각이 나를 휘감는다.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그런다. 저번 주에는 기도하는 도중에 갑자기 너무 죽고 싶어졌다. 미치는 줄 알았다. 이런 식이다. 녀석은 나를 너무 잘 알아 금방이고 덮쳐온다. 녀석을 이기려는 방법에 사용되는 도구에 독서가 있다.
가끔 - 최근들어선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모든 학생이 나처럼만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하는 투로 형성되는 말이다. 혼신을 다해 뜯어말리고 싶다. 나처럼 읽으면 안 된다. 가능하면 최대한 쾌락을 즐기며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 정지 장치가 아니라, 생각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독서를 여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독서를 하면서 충실한 동반자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읽는 마음을 바꾸고 싶다. 쉽지 않다. 진짜 모범이 되고 싶다. 맘 같지 않다. 겉과 속이 다르고 싶지 않다. 불가능하다. 제대로 살고 싶다. 힘들다.
부디 내게 용기를 더해 내 길을 가게 하시기를, 제발 희망을 깨닫게 하셔서 행복하게 하시기를.
'다이어리 > 두서없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 (0) | 2023.04.13 |
---|---|
[토론, 두렴, 가치관] (0) | 2023.04.13 |
[내 작은 바람] (0) | 2023.04.11 |
[내가 꿈꾸는 삶] (0) | 2023.04.11 |
[思考, 混沌, 謝罪] (0) | 202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