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 23:01
밑의 글에는 안 적혔겠지만, 이 글을 올리는 건 꽤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말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 이 비판 정신은 없었으리라. 내용이 탁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교양서일라나.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밑 글은 쓴지 1년이 훨씬 지난 글이다. 밑 글을 쓴 후 1년하고도 더 지난 지금, 나는 얼마나 성찰적인지 다시 돌아본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더 음미하며 살고 싶다.
아거, 『불온한 독서』(새물결플러스, 2017), 292쪽 14000원
'불온한 독서', 제목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독서'가 책에 있다는 사실은, 저자 자신이 먼저 애서가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애서가의 이야기를 읽는 행위는 언제나 즐겁다. 게다가 '불온'이라는 단어는 또 어떠한가. 같은 인간끼리 계속해서 '복종'을 강요하고 '거절' 시 질타를 받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바로, '생기'를 넣어줄 수 있는 단어가 아닌가! 이런 점에서 '불온한 독서'는 제목부터 내 눈길을 끌었다.
사실, 불온한 독서를 처음 읽을 때만해도 이 정도의 찬사는 내 입에서 나올 수 없었다. 이벤트로 얻은 책이라 단순한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얻어진 책이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볼온한 독서에 나는 심취했다. 점점 더 내 심장을 뛰게 했으며, 내 시선은 저자의 글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내 사고의 방향은 점점 더 새롭게 변해갔으며, 나는 저자 '아거'가 원하는 인간상에 한층 더 다가갔다. 불온한 독서는 아주 역동적이고 급진적인 책이다.
제1장에서, 저자는 "정말 우리 사회는 자유롭습니까?"하고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표현의 자유는 그래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기본 전제이자 필요충분조건이다."을 1장의 마지막 말로 던진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개인이 자유로운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만 한다. 둘째로는, 자신이 사회 안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얼마나 사유를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 문장은 우리게, "사회와 자신의 자유한 정도를 보라"하고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누구든, 억압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거다. 저자는 '자유로운 사람'의 기본이 '글쓰기'라고 서술한다. 사유도 필요하지만, 그 사유가 제대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글쓰기라는 방편으로 표현돼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글쓰기를 '불온'이자 '안티'라고 덧붙여 서술한다. 이 점은 우리 사회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을 싫어하고 거부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사회의 부자유함을 자각해야 한다고 다그친고, 자유로와지는 길이 위험한 길이라고 미리 말한다.
제 2장부터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본격 나타내기 시작한다. 저자 '아거'가 서술하는 얘기에서 2~7장이 멈추지 않고 연결된다. 흥미진진하게, 쉴세없이 계속 연결된다. 그래서, 나는 2장을 읽기 시작한 지점부터는 7장까지 쉬지 않고 읽기를 권한다.
제 2장과 제 3장에서는, 억압은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서술한다. 내 생각에는 2장과 3장을 합치는 게 좋을 거 같다. 2,3장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겠다. "억압은 서서히 다가오니 정신을 차리고 저항하라." 자유를 얻으려면 자유를 없애는 억압을 제하여야 한다. 그런데, 억압이 억압인 줄 모르고, 넘어간다면 자유와 억압의 전쟁은 반드시 억압의 승리로 끝난다. 그래서 억압은 자신이 억압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서서히 잠식'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1정도만 억압하면 사람은 억압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다며 무시한다. 그럴 때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서서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억압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4장에서는 조그마한 억압을 허락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나보다 높은 사람의 명령이라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위계 질서의 만연함이 우리 사회의 억압을 더 확장한다는 의미이다. 권력층은 지배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피지배층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런데 이 억압이 '명령'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기에 피지배층은 아무런 사고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의 반복으로 억압은 평범한 일이 되고, 자연스럽게 억압받는 사람의 피해는 없는 듯 해진다.
사람을 억압하는 악이 너무 평범해진 나머지, '평범한 악'이 형성되는 시점이다. 억압받는 상황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인상을 남겨서 악을 감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평범한 악'이 팽배한 시대는, 저항하지 않은 인간과 억압하는 인간의 합작품이다. 저항하지 않는 인간의 특징은, 억압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왜'라는 질문을 한 사건에 던질 줄 모른다는 특징이 있다. 억압 사건에 익숙해지다보니 억압인 줄 모를 뿐 아니라 '왜'라고 질문을 던질 줄도 모른다.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라는 시가 아주 잘 표현했다. 발췌해서 실어본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시인 이성복이 고백한다. 제 5장의 내용이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다른 의견'을 자아낼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아니, 다른 의견을 도출해낼 수밖에 없다. 딴지를 거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 다른 의견을 극도로 혐오하는 한 실체가 있다. 바로 '우상'이라는 실체인데, 우상은 '무조건 복종'을 우리게 요한다. 어떤 모습과 닮아있는가? 우리 사회가 닮아있지 않은가? 권력층의 유지를 위해서 '다른 의견'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받아들여지고 다른 의견을 내면 워협을 받는 사회 말이다. 한 마디로 저항하지 않는 우리는 '사회의 존속을 위함'이라는 이름하에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를 '우상'으로 숭배하며 살고있다는 말이다.
권력층은 당연히 자신의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만한 사람, 즉 피지배층이 존재해야 한다. 인간끼리의 '수직 관계'가 존재하야 한다는 말이다. 수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첫째로는 서열의 당연시이고 둘째로는 권력층에 모든 자유가 집중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두 가지가 아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학생 때부터 성적이라는 꾸밈으로 서열을 계속해서 매겨서 서열을 당연시하고, 돈이 많아야 문화생활이고 차별받지 않음이고 다 가질 수가 있다. 여기까지 6장이다.
어떤 권력이 체제를 전환하게 되면, 권력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체제의 이데올로기에 걸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원한다. 그래서 교육은 '체제의 얼굴'이다.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에 적절한 저항과 반박을 낸다면 묵살당하고 옳지않다고 비난당한다. 또한 오직 상위층에 올라가야 한다는 성공지상주의를 계속해서 주입한다. 다 부족한 인간끼리의 수직 관계를 학생때부터 착실하게 교육받는다. 나치 시대의 교육과 동일하게 말이다. 7장의 이야기다.
이제 8장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불온하라'고 권한다. 세계 인권의 역사를 보면, 무시받던 인권 신장의 계기는 모두 '저항', 즉 '시민불복종'이었다. 억압당함에 수치와 좌절을 느끼고, 다지 분노로 전환된 다음, 분노가 '시민불복종'으로 확장돼 표현됐다. 그래서 '진보'는 항상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만, 저항할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자유를 보장받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을'이다. 하지만, '을'은 언제나 '들'이다. "우리는 '을'이자 '들'인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은 자유를 얻었다." 우리가 '들'이니, '갑'을 이기지 못할 것도 없고, 현 세대에 안 되더라도 후 세대에 이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8장 마지막이다.
'불온한 독서'의 부제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의 길'이다. 정말 부제에 적합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말하는 내용은 유사 주제를 가지고 쓴 책보다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저자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몇몇 역사가의 이야기까지 곁들여서 개인을 자극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다른 책에 비해서는 적게 썼지만, 한 개인을 변화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저자 자신이 어떻게 자유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서술하는 '프롤로그'와 교육을 서술하는 '7장'에서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두 문단은 이 책을 관통한다. 몇 문장만 뽑아보겠다. "나는 기꺼이 불온을 택한다. 그것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자 머물지 않고 항상 흐르는 자가 될 수 있는 길, 곧 나라는 존재에 스스로 존엄을 부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착한 아이'의 표본이었다. 가정, 교회, 학교, 친척집과 같이 '윗사람'이 있는 곳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윗사람이 뭘 시키든지 별 말없이 당연히 순종해야하는 줄로 알고 순종했다. 하기 싫다고 말해본 적도 얼마 없을 뿐더러 "너무 착하다."라는 말은 나와 지냈던 어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던 말이다. 그래서 차분했고, 그래서 '생각'이라는 단어는 '어른에게서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었다. 하지만, 초등 6년부터 독서를 시작하며 나는 점점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갔다. 하지만 여전히 윗사람의 굴레 안에서 있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두 문단은 - 정말로, 가능하면 다 적고 싶다. - 내 심장을 뛰게 했다. 그래, 나를 흥분시켰다. 난생 처음, "나도 불온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리잡혔고, "올바른 독서를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생겼다. '옳지 않음에 저항하기'를 17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르쳐준 나의 첫 책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책 두 권을 꼽으라고 할 때, 당당하게 성경과 불온한 독서를 택한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장은 7장이다. 나는 독서를 시작하면서, 학문의 즐거움을 익혔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하는 공자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깨닫게 됐다. 그렇게 나는 학문을 즐겁게 하는데, 학교 공부만 하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학문의 즐거움'을 가르치지 않는 현행 교육 방법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볼온한 독서를 읽으면서 시너지가 발휘돼서 내 머리속에서 '펑!'하고 폭발했다. "'등수' 세우기가 잘못됐구나!"생각이 확실하게 자리 잡혔다. 대체 우리 교육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를 알게 된 부분은, 저자가 218~219쪽에서 인용한 문구이다. 이 문구를 읽으면서, "오오, 우리나라 교육하고 똑같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히틀러의 공부법이라는 말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는 "으음...? 미친ㅋㅋㅋㅋㅋㅋㅋ"이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이 정도로 내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었다.
정리하겠다. '불온한 독서'는 '빌린 책'이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에서, 억압받는 사회에 살던 작가에게, 그외 많은 사람에게 빌린 책이다. 책의 대부분이 '인용구'로 구성돼 있으며, 인용문에서 저자 자신의 할 말을 쏟아낸다. 다양한 사상을 독서하며 자신만의 굳건한 견해를 세워나가라는 저자의 권유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개인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사회의 만연한 악을 깨닫기 원하는 사람, 너무 온건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는 불온한 독서를 반드시 일독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과연 온건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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