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6. 20:05
학교 선생님이 계신다. 내가 문학을 너무 읽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시는 선생님이 계신다. 사람마다 취향은 달라!라고 생각하면서 무시하고, 그냥 넘겨버리곤 했다.
드디어, 문학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처음은 김은국이 쓴 순교자, 다음은 조남주가 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다음은 무얼 읽을까 고민하던 중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낭독 및 해설하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어지는 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 주제도 '완성되지 않은 흑인 자유'이라길래 더 관심이 갔다.
선생님께, "이제 톰 소여의 모험읽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읽고, 다른 문학 책도 일으려고요!"하며 자랑했다. 선생님 왈, 읽지 말라신다. 이게 무슨소린가? 잠시 벙쪘다. 선생님이 뱉으시는 다음 말, 그런 책은 문고판이 많아서 생기부에 도움이 안 돼. 선생님 앞에서는 수긍하는 척, 괜찮을 척을 취하며 도움이 될만한 책을 추천해달라 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애정어린 말로 나에게 해주셨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허나,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내 마음인데, 틀린 마음도 아니고. 한 주체로서 살아가는 '나'가 그러겠다는데 누가 말릴쏘냐. 마음이 아프다. 대체 왜 독서까지도 생기부를 신경써야 하는가? 독서는 쾌락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하는 분노가 올라온다. 속상하다. 왜 독서가 이런 이상하기 짝이 없는 맥락에 같혀 버렸을까.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맥락말이다.
'독서'를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 내리는 현실은, 우리 인간 모두가 각기 특색이 있다는 현실과 비슷하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독서를 이렇게 정의내리고 싶다. 살게 해주는 동아줄. 혼자 있어 외로워 죽고플 때, 즐겁지 않아서 사라지고 싶을 때, 특정 대상에 그림을 느낄 때, 책은 내가 피할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독서, 아름다운 독서라는 말이, 단순히 생기부 작성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빗겨가게 하는 도구로, 누군가에게는 안식처로, 누군가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로, 누군가에게는 단 하나뿐인 존재로, 각기 다른 그러나 동등한 이유로 독서를 사랑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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