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222

시행?

2018. 7. 31. 12:54 시행 : 같은 조건에서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우연에 의해서 정해지는 실험이나 관찰 - 같은 조건이라는 게 가능하긴 할라나. 수학은 결국 극추상 영역이니 관념 속에서는 가능한 걸까. 하지만 인간이 매순간 전환되는데 관념까지 같다는 게 가능할까. - 우연이라는 게 있을까. 시행의 예시로 주사위나 동전을 드는 경우가 많던데, 이의 결과가 진짜 우연일까? 던지기 시작하는 시점의 각도, 던지는 힘의 세기와 방향, 그 시점에 있는 공기 저항의 정도, 바람의 세기와 방향, 던져짐이 끝나고 닿은 면의 매끄러운 정도, 던져짐이 끝나는 순간의 각도. 정말로 우연이기만 할까. 던지는 각도와 세기와 방향은 몸의 신경 작용으로 일어난 게 아닐까. 그렇네, 기본적인 신경 작용..

엘목사님 일.

2018. 7. 31. 7:25 나는 왜 항상 이 모양 이 꼴일까. 누군가 가벼이 던진 돌은 개구리를 쳐죽인다는 말, 비판하는 날선 검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라는 조언, 같이 기다려보자는 권면. 계속해서 나와 함께 했으나 내 안에 들어오진 않았나 보다. 나는 이렇게 '그 가해자'가 됐다. 가해자를 그렇게 싫어하던 나도, 그냥 하나의 폭력자에 불과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벌써 깨져버린 사기 그릇. 어쩌겠나 싶다. 다 때가 돼서 그런 거다라며 자위하지만,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안다. 얼목사님을 떠나고, 그분과 교류가 없어진다는 현실은 딱히 무관심하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상처 입은 분들이다. 내가 상처 준 분들이다. 특히, 죽어 마땅한 죄를 엘목사님께 범했다. 부끄럽다. 엘목사님께만이 아니라 ..

2018 희년학교 내 마음대로 후기

@ 한 사람에게라도 담론 확장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올리는 이 글에서 기도함: (1) 위로하시는 주님께서, 내 이 글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받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친히 보듬어주시길. (2)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가 상처와 고통으로 끝나는 것/허무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어버이께 영광 드리는 열매가 되길. (3) 친히 폭력을 자행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내 마음 가운데 페리코레시스적 사랑을 허락하시길. (4) 제발 그만 괴롭히도록 '그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셔서 제게 직접 말하게 되기를. 1. 전 희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희년을 마음에 새긴 건 중학교 3학년쯤일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후 기독경을 읽다 보니 희년을 다시 수용하게 됐습니다. 이때는 레위기 25장 8절 ..

다이어리/여행 2023.04.28

[매번 가던 수련회를 가지 않는다]

2018. 7. 28. 21:26 1. 원래는 쓸 생각이 없던 글이다만 수련회 때마다 설명하기란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여 처음부터 작성해본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서 많이 이상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상당히 길다. (문장의 시제에 유의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싶다.) 배터리가 없어 수정을 못하고 한 번에 써내려간 글이라 깊지도 깔끔하지도 못함을 이해하시길 바라며. 2. 먼저 일러둘 말이 있다. 고등부 수련회를 가지 않고 다른 자리를 찾아 나선 작업은, 내 독단이다. 누구에게 알리고 시작한 작업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한답시고 구걸하고 다니지도 않았다. 내가 수련회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18년 7월 22일 전에 안 분들은 내 '선포'를 들으셨을 따름이다. 고로, 이 사건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

[하나됨, 양립, 폭력]

2018. 7. 10. 18:34 ※ 2018년 6월 7일에, 학력평가를 치면서 남은 시간에 한 생각 첫 번째. 지금 와서야 추가하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그냥 구별치 말고 읽으시면 될 듯해요. 교회의 하나됨이란 무엇입니까? 사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있지는 않은지라 말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아는 점은, '싸우지는 않는다'는 점은 압니다.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면, 왜 싸우지 않을까요. 서로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데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스도교회 안에서의 하나됨이라고 한다면, 상반과 모순이 양립하는 선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회가 믿는 '신'이라는 존재부터가 '양립 가능성'을 체택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다음에 제가 쓸 ..

[인간, 세계, 있음]

2018. 7. 10. 15:59 ※ 2018년 6월 7일에, 학력평가를 치면서 남은 시간에 한 생각 첫 번째. 지금 와서야 추가하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그냥 구별치 말고 읽으시면 될 듯해요. 인간人間 : 사람. 문자 그대로 한다면 '사람'과 '사이'를 합친 어휘입니다. 사람인즉 사람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라는 말일까요. 애초에 사람이 무엇인지 의문이 듭니다만 넘어가도록 합시다. 이 문제는 아직 제 능력 밖 문제니깐요. 사람 사이에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계속 반추하고 반사하는 존재입니다. 마치 거울과 같은 존재랄까요. 스스로를 타자에 기대에 정의 내리고, 그제서야 스스로 독존하게 됩니다. 스스로 독존하는 순간에서도 (타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타자와 연결하고 다시 공유하고 교류하는 작업을 계..

삼위일체 공부 (이정규 목사님 페이스북)

2018. 6. 3. 0:56 이정규 - 삼위일체 교리를 깊이 공부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와 함께 책을... | Facebook 일시적으로 차단됨 일시적으로 차단됨 회원님의 이 기능 사용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이 기능 사용에서 일시적으로 차단되었습니다.Facebook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저희에게 알려주 m.facebook.com 웨인 그루뎀, 성경핵심교리 6장(CLC) 브루스 밀른, 기독교 교리 핸드북 5장(IVP) 유해무, 삼위일체론(살림) 마이클 리브스, 선하신 하나님(복있는사람) 장 칼뱅, 기독교강요 1권 1장크리스찬다이제스트) 대럴 W. 존슨,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IVP) 톰 스매일, 잊혀진 아버지(IVP) 그레엄 글즈워디, 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정진홍 - 엘리아데, 성과 속의 관계]

2018. 3. 15. 22:31 현상이란 무엇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드러남'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드러남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드러나게 하는 '무엇(1)'과 드러난 '무엇(2)'이 그 과정의 앞뒤에 마련되지 안으면 드러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2)는 (1)이 없으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가 (1)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는 그러한 기술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는 '드러남'의 과정, 다시 말하면 (1)이 경험되는 과정은 (1)을 (1)이게 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을 겪은 (1)은 이미 (2)로 현존합니다. 하나의 사물이 스스로 자기(1)이면서 자기가 아닌 '다름'(2)을 낳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둘은 하나이지만 둘..